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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트렌드 11탄] 혁신의 현장 ‘CES 2015’을 가다

포스코ICT 2015. 1. 27. 09:29

지난 6~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5’의 최대 이슈는 사물인터넷(IoTㆍInternet of Things)이었다. 사물인터넷이란 가전ㆍ자동차 등 사물들이 서로 데이터를 주고 받으며 인간에게 다양한 정보와 기능을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TV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냉장고ㆍ세탁기ㆍ에어컨 등의 작동 상태를 알아보고 리모컨으로 켜고 끌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중앙에 마련된 한 기업의 스마트홈을 따라가보자. 퇴근 후 자동차에서 내린뒤 스마트워치로 주차명령을 내리면 자동차가 알아서 주차를 마친다. 스마트폰을 눌로 현관문을 열고, TV와 전등을 킨다. 밀린 빨래를 처리하기 위해 세탁기를 돌리고 소파에 몸을 기대 TV를 본다. 지친 몸을 일으키기도 귀찮은 그는 TV 리모컨을 조작해 실내 온도를 조절하고, 드라마를 보는 중에 TV화면을 통해 세탁이 끝났다는 메시지를 받는다. 이처럼 IoT 시대는 멀리 있지 않았다.

 

그간 IoT가 뜬구름 잡기 식의 이론이나 제한적 기술 수준에서 소개됐다면, 이번 CES에선 세계 주요 IT 기업들이 가전ㆍ모바일ㆍ보안ㆍ자동차 등에서 구체적인 기술을 시연했다. 기조연설에 나선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도 ‘IoT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다’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IoT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삼성은 오는 2017년까지 삼성이 생산하는 모든 TV, 2020년까지는 모든 IT 제품이 IoT로 연결되도록 할 계획이다. 또 올해에 IoT 개발자 지원에 1억 달러(약 1,100억원)를 투자한다.

‘가전쇼’인지 ‘모터쇼’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자동차 기업들도 CES를 빛냈다. 이번 CES는 현대차ㆍBMWㆍ벤츠ㆍ포드ㆍGM 등 10여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참여해 첨단 IT 기술을 뽐냈다. 기조 연설자 5명 가운데 2명이 자동차 기업 최고경영자일 정도였다.

 

자동차 업계가 제시한 트렌드는 ‘스마트카’였다. 전기ㆍ전자ㆍ통신 기술을 융합해 고도의 안전과 편의를 제공하는 자동차로 통신망에 상시 연결된 커넥티드카를 확대한 개념이다. IoT로 핵심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벤츠가 선보인 콘셉트카 F105가 대표적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이 차는 자동 주행은 물론이고 회전식 의자에 통유리로 이뤄져 안락함과 공간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차량 내에 설치된 터치스크린을 통해 인터넷은 물론 주변 360도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앞으로 자동차는 단순히 이동수단이 아니라 생활공간이 될 것이라는 게 벤츠의 확신이다.

BMW는 무인주행 기술을 기반으로 한 원격 발렛 파킹 어시스턴트(Remote Valet Parking Assistant) 시스템을 선보였다. 포드가 도로 테스트 중인 하이브리드 연구 차량은 주변 물체를 감지하고 다른 자동차와 보행자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음성과 제스처로 작동하는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시스템도 눈길을 끌었다. 포드는 차세대 음성작동 기술을 적용한 ‘싱크3’ 시스템을, 폴크스바겐은 사람의 손짓에 따라 작동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GM은 구글의 차량용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 오토, 애플의 카플레이 등을 적용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공개했다.

물론 CES는 이름처럼 TVㆍ냉장고ㆍ세탁기 같은 가전기기가 주인공인 가전쇼다. 이런 점에서 이번 CES는 ‘가전 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재확인한 자리였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SUHD와 OLED TV를 앞세워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가전에서도 초벌빨래, 복합세탁을 지원하는 차세대 세탁기 등 미래형 가전을 잇달아 선보였다. 특히 IoT 시대를 맞아 ‘개방성’을 기치로 내건 것은 향후 한국이 IoT의 주도권을 확보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CES를 관통하는 또 다른 핵심 키워드는 ‘탈(脫)가전’이었다. 가전전시회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무인자동차ㆍ헬스케어ㆍ웨어러블 기기 등 혁신적인 IT 기기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웨어러블 기기는 시계 형태에서 벗어나 목걸이ㆍ반지는 물론 신발 깔창이나 허리띠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스마트 헬스케어 제품은 일상 생활에 더욱 밀착하고, 디자인까지 수려해졌다.

특히 무인항공기(드론)가 샛별로 떠올랐다. 올해 처음으로 독립전시관을 마련했지만 드론의 시험 비행을 보려는 인파로 드론 전시관은 늘 북새통이었다. 이 분야 세계 1위인 중국 기업 DJI의 시연 때에는 감탄사와 환호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기술은 한국에선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에선 안전모에 센서를 달아 업무지시ㆍ사고예방을 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술이 개발됐지만 ‘안전모에 구멍이 없어야 한다’는 인증 규제에 묶여 있다. 스마트 헬스케어 제품은 의료기기로 간주돼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미국 네바다ㆍ플로리다ㆍ캘리포니아주 등에서는 무인 자동차 운행이 허용되지만 한국에서는 도로 테스트를 금지하는 자동차관리법 때문에 상용화가 불가능하다. 드론도 관련 부처만 기획재정부ㆍ산업통상자원부ㆍ미래창조과학부ㆍ국토교통부 등 네 곳으로 컨트롤타워가 따로 없다 보니 안전성 인증을 전담하는 조직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런 신기술이 CES를 빛내는 새 얼굴로 등장했다는 것은 IT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젠 단순한 가전ㆍ모바일로는 고부가가치를 얻을 수 없으며, 새로운 기능ㆍ기술과 융합해야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낡은 규제가 길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다.

 

1865년 증기자동차 교통사고가 늘어나자 영국 의회는 ‘적기조례’(赤旗條例, Red Flag Act)라는 법을 만들었다. 운전사와 화부(火夫) 외에 붉은 깃발을 든 신호수를 둬 자동차의 운행을 행인들에게 알리고, 시내에서는 속도를 시속 3㎞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이 규제는 1896년까지 어이졌다.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상용화한 영국의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내리막을 걸었고, 결국 미국ㆍ독일ㆍ프랑스에 산업 주도권을 내주는 결과를 낳았다. 설익은 기술 규제의 폐단을 알려주는 사례다.

 

 

 

이번 CES에선 카피 제품을 주로 내놓던 중국 업체들이 독자적 제품을 선보이는 등 추격이 만만치 않았다. TVㆍ냉장고 등 가전을 제외한 혁신제품을 주도한 곳은 삼성ㆍLG전자가 아닌 미국ㆍ중국ㆍ유럽의 벤처기업이었다. IT 융복합 시대에 한국이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법ㆍ제도가 기술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할 듯싶다. 규제를 담당하는 국회의원ㆍ공무원들부터 CES 현장에 다녀와 새로운 IT 물결을 보고 느꼈으면 한다.

 

[글 / 중앙일보 산업부 손해용 기자]